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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외울 게 참 많아요. 몇 년에 누가 왕이 됐고, 어디서 전쟁이 났고, 어느 조약이 맺어졌고. 마치 사건들을 줄줄이 꿴 목걸이 같지요. 그런데 한 번쯤 이런 생각 안 해 봤나요? "그래서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바로 이 질문을 평생 붙들고 산 사람이 있어요. 함석헌이라는 분이에요. 1901년에 태어나 1989년까지, 88년을 살았어요. 그는 한국 역사를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읽으려 했어요. 그 이야기에 붙인 제목이 바로 '뜻으로 본 한국역사'였답니다.

친구가 넘어졌다고 해 볼게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넘어진 덕분에 조심하는 법을 배웠다'고 하면, 같은 사건에 '뜻'이 생겨요. 무엇이 일어났느냐를 넘어서, 그래서 무엇을 배웠느냐를 보는 거예요.
함석헌이 한국 역사를 본 방식이 딱 이거였어요. 우리 역사는 침략도 많이 받고 가난도 길었어요. 그는 이걸 부끄러운 실패로만 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고난의 역사'라고 불렀어요. 고난을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고 무언가를 배워 온 역사라는 거예요. 아픈 일에도 뜻이 있다고 본 거지요.

그럼 그 역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보통은 왕이나 장군 이름이 떠오르지요. 그런데 함석헌은 전혀 다른 데를 가리켰어요. 바로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이에요. 그는 이들을 '씨알'이라고 불렀어요.
씨알은 씨앗 한 알을 뜻해요. 작고 흔하고 별것 아닌 것 같지요. 밟히면 흙 속에 묻혀 버려요. 그런데 그 씨앗 하나가 봄이 되면 싹을 틔우고 결국 들판을 채워요. 함석헌이 보기에 진짜 역사를 끌고 가는 힘은 화려한 위인이 아니라,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평범한 사람들, 그 씨알들이었어요.
이 생각은 그의 스승이었던 유영모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어요. 어려운 한자 대신 우리말 '씨알'을 쓴 데에는, 보통 사람의 말로 보통 사람을 이야기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답니다.

함석헌은 글만 쓰는 학자가 아니었어요.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권력 앞에서도 또박또박 말하는 사람이었어요. 일제강점기에도, 해방 뒤 독재 정권 아래에서도 그랬어요. 그래서 여러 번 감옥에 갇혔지요.
그런데 그의 저항 방식이 특별했어요. 맞서되 주먹은 쓰지 않는 '비폭력'이었어요. 이게 비겁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에요. 누가 때려도 똑같이 때리지 않고, 그 자리를 버티며 "그건 틀렸다"고 계속 말하는 거예요. 무거운 문을 힘으로 부수는 대신, 잘못됐다는 걸 모두가 볼 때까지 문 앞에 서 있는 셈이지요.
작은 씨알 하나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하지만 수많은 씨알이 폭력 없이 함께 버티면, 결국 잘못된 것을 바꿀 수 있다고 그는 믿었어요. 씨알 사상과 비폭력은 이렇게 한 몸이었답니다.

함석헌은 한국 역사를 외울 사건의 목록이 아니라, 뜻을 품은 이야기로 다시 읽은 사람이에요. 그 이야기에서 고난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배움의 자리였고, 주인공은 왕이 아니라 이름 없는 보통 사람, 곧 씨알이었어요. 그리고 그 씨알이 세상을 바꾸는 방법으로 그는 주먹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비폭력을 내놓았어요. 다음에 역사책을 펼칠 때, '무슨 일이 있었나'만이 아니라 '그래서 무슨 뜻이었나'를 한 번 물어보세요. 그게 바로 함석헌이 우리에게 건넨 읽는 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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