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00여 년 전 중국에서는 글과 말이 완전히 달랐어요. 사람들이 입으로 하는 말과 종이에 적는 글이, 서로 다른 언어에 가까웠거든요. 글을 쓸 때는 수백 년 전 방식 그대로의 어려운 옛 문어, 그러니까 문언문으로 적어야 했어요.
한국으로 치면 평소엔 보통 한국어로 말하면서, 무언가를 적을 때만 사극에 나오는 옛 한문 말투로 써야 하는 셈이었죠. 그러니 글은 오래 공부한 사람만의 것이었어요. 보통 사람은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알아도, 그걸 글로 적지는 못했어요. 학교에 못 간 사람은 평생 글과 담을 쌓고 살아야 했죠. 바로 이 답답한 벽을 무너뜨린 사람이 후스예요.

후스는 1891년부터 1962년까지 살았던 중국 사람이에요. 시골 집안에서 자랐는데, 열아홉 살이던 1910년에 나라에서 학비를 대 주는 유학생으로 뽑혀 미국으로 떠났어요.
처음엔 미국 코넬대학에서 농사 짓는 법을 공부했어요. 사과 품종을 분류하는 수업까지 들었대요. 그런데 영 적성에 안 맞아서 철학과 문학으로 길을 바꿨어요. 그리고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학으로 옮겨 가, 한 선생님을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졌어요. 그 선생님이 바로 존 듀이예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이름난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였죠.

듀이의 생각은 이랬어요. 진리란 하늘에서 미리 정해 내려온 게 아니라, 우리가 문제를 푸는 데 쓰는 도구라는 거예요.
요리 레시피를 떠올려 보면 쉬워요. 어떤 레시피가 좋은 레시피인지는, 직접 만들어서 먹어 보기 전엔 알 수 없잖아요. 맛있으면 좋은 레시피고, 맛없으면 고치면 되죠. 듀이는 생각도 똑같다고 봤어요. 아무리 멋진 말처럼 들려도, 실제로 해 보고 결과가 좋아야 비로소 쓸모 있는 생각이라는 거예요. 반대로 아무리 오래된 가르침이라도 지금 문제를 못 풀면 과감히 바꿀 수 있고요.
후스는 이 태도에 푹 빠졌어요. 그래서 중국에 소개하면서 실험주의라고 옮겼죠. 과학자가 가설을 세우고 실험으로 확인하듯, 우리 생각과 사회 문제도 실험하듯 다뤄 보자는 거였어요. 정답을 외워 받드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묻고 시험해 보는 공부였죠.

후스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어요. 대담하게 가설을 세우되, 조심스럽게 증거로 확인하라는 거예요.
이 둘은 한 짝이에요. 앞부분만 있으면 그냥 허풍이 되고, 뒷부분만 있으면 무서워서 아무 생각도 못 해요. 먼저 겁내지 말고 "이렇지 않을까?" 하고 크게 짐작해 본 다음, 그게 정말 맞는지 증거를 하나하나 따져 보는 거죠. 친구와 다툴 때 "네가 틀렸어"라고 우기기 전에, 진짜 그런지 증거를 찾아보는 습관과 비슷해요. 후스는 이걸 학문에도, 옛 책을 읽는 데도, 사회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했어요.

후스가 이 정신으로 일으킨 가장 큰 변화가 백화문 운동이에요. 백화문은 사람들이 평소에 쓰는 말 그대로 적는 글이에요.
1917년, 후스는 신청년이라는 잡지에 글 하나를 실어요. 어려운 옛 문어를 버리고 평소 말하듯 쉬운 글로 쓰자고 제안한 거예요. 그해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스물여섯 나이에 베이징대학 교수가 되어, 이 새로운 물결의 한복판에 섰어요.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요. 수백 년 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글쓰기 방식을 바꾸자는 거였으니까요.
재미있는 건 1920년에 후스가 펴낸 첫 백화시집이에요. 책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바로 '시험 삼아 해 보기'라는 뜻이었어요. 새로운 글쓰기가 통할지 자기부터 직접 실험해 본 거죠. 어떤 글이 좋은 글이냐는 물음에 후스의 답은 간단했어요. 더 많은 사람이 읽고 배우고 마음이 움직이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거예요. 어렵고 멋져 보이는 글이 아니라, 실제로 통하는 글로 증명하자는 거였죠. 덕분에 학교를 오래 못 다닌 보통 사람도 점차 글을 읽고 쓰게 되었어요.

1919년에는 스승 듀이가 직접 중국에 왔어요. 2년 넘게 머물면서 여러 도시를 돌며 강연했는데, 그동안 후스가 곁에서 통역을 맡았어요. 스승의 말을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직접 전한 셈이죠.
그 무렵 후스는 또 한마디를 남겨요. 문제를 더 연구하고, 거창한 주의는 덜 말하자는 거였어요. 세상을 단번에 바꿔 준다는 멋진 큰 이론에 휩쓸리기보다, 눈앞의 작은 문제를 하나씩 실제로 풀어 가자는 뜻이었죠. 이것도 결국 실험주의예요. 큰 구호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려 들지 말고, 작은 일부터 해 보고 확인하자는 거니까요. 누군가는 너무 더디다고 답답해했지만, 후스는 끝까지 이 차분한 태도를 지켰어요.

실험주의에는 뜻밖의 선물이 숨어 있었어요. 세상에 영원히 고정된 정답이 없다면, 누구도 "내 말이 무조건 옳다"고 우길 수 없잖아요. 그래서 후스는 늘 자기 생각도 틀릴 수 있다고 여겼고, 나와 다른 의견에도 귀를 기울였어요. 토론에서 진 쪽을 윽박지르기보다, 서로 다른 생각을 너그럽게 참고 들어 주는 일을 무척 소중하게 여겼죠. 이렇게 의심하고 시험하고 또 양보할 줄 아는 태도가, 후스를 중국 현대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후스는 미국에서 듀이를 만나 실험주의를 배웠어요. 진리는 정해진 정답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도구이고, 생각도 요리처럼 직접 해 보고 결과로 확인해야 한다는 태도였죠. 후스는 이 정신을 중국으로 가져와, 어려운 옛 글 대신 말하듯 쉬운 글을 쓰자는 백화문 운동을 이끌었고, 거창한 주의보다 눈앞의 문제를 하나씩 풀자고 했어요. 그래서 후스를 기억할 때 떠올릴 한 가지는 이거예요. 좋은 생각인지 아닌지는 멋진 말이 아니라, 실제로 해 본 결과가 정해 준다는 것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