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 두 명에게 똑같이 만 원씩 줬다고 해봐요. 한 명은 그 돈으로 책도 사고 버스도 타고 친구랑 떡볶이도 먹어요. 그런데 다른 한 명은 얼마 전 다리를 다쳐서 휠체어를 타요. 버스에 오르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가고 싶은 도서관에는 계단밖에 없어요. 손에 쥔 돈은 똑같이 만 원인데,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달라요.
여기서 질문 하나 던져 볼게요. 두 사람은 정말 똑같이 잘사는 걸까요? 통장만 보면 똑같지만, 살아 보면 너무 다르죠. 바로 이 차이를 평생 파고든 사람이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에요. 그는 "가진 돈만 보면 진짜 중요한 걸 놓친다"고 말했어요.

아마르티아 센은 1933년 인도에서 태어났어요. 아홉 살이던 1943년, 그는 벵골 지역에서 끔찍한 기근을 두 눈으로 봐요. 300만 명 안팎이 굶어 죽었는데, 어린 센이 이상하게 느낀 게 있었어요. 그해 곡식이 유난히 모자란 것도 아니었거든요. 시장에는 식량이 있는데 사람들은 굶었어요. 가난한 이들은 그 식량을 살 돈도, 손에 넣을 길도 없었던 거예요.
이 장면이 센을 평생 따라다녀요. 그는 묻기 시작해요. 잘산다는 건 도대체 뭘까? 식량이 있어도 다가갈 수 없으면 무슨 소용일까? 이 물음을 50년 넘게 붙잡은 끝에, 1998년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은 그가 내놓은 답이 바로 '역량 접근법'이에요.

자전거 한 대를 떠올려 봐요. 자전거는 그냥 '물건'이에요. 진짜 중요한 건 그 자전거로 내가 '어디든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센은 이렇게 실제로 해낸 상태를 '기능'이라고 불렀어요. 잘 먹는 것, 학교에 다니는 것,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처럼 삶을 채우는 '하기'와 '되기'요.
그런데 자전거가 있어도 다리를 다친 사람은 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센이 가장 중요하게 본 건 물건도 결과도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할 수 있는 자유'였어요. 이걸 '역량'이라고 해요. 내가 원하면 실제로 그걸 해낼 수 있는 힘, 곧 선택의 폭이에요. 자전거를 탈지 말지는 내 마음이지만, 타고 싶을 때 탈 수 있어야 진짜로 자유로운 거니까요. 같은 만 원이라도 한 친구에겐 넓은 세상이 열리고 다른 친구에겐 닫힌 문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옛날 경제학자들은 한 나라가 잘사는지를 거의 돈으로만 쟀어요. 국민이 평균 얼마를 버는지요. 그런데 센은 고개를 저어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학교가 없어 글을 못 배우면, 병원이 없어 일찍 죽으면, 그걸 잘사는 거라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센은 친구이자 경제학자인 마붑 울 하크와 함께 새로운 잣대를 만들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건강하게 사는지, 얼마나 배우는지, 얼마나 여유 있게 사는지를 한데 모아 보는 거예요. 오늘날 여러 나라를 비교할 때 쓰는 '인간개발지수'가 여기서 나왔어요. 나라의 점수를 통장 잔고가 아니라 사람들의 실제 삶으로 매기기 시작한 거죠.

센은 발전이라는 말도 다시 그려요. 발전이란 돈이 불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넓어지는 거라고요. 굶지 않을 자유, 배울 자유, 아프면 치료받을 자유, 자기 생각을 말할 자유요. 그가 쓴 유명한 책의 제목도 아예 《자유로서의 발전》이에요.
재미있는 건, 센이 민주주의까지 이 눈으로 봤다는 거예요. 그는 자유로운 언론과 선거가 살아 있는 나라에서는 큰 기근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봤어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정부가 굶주림을 못 본 척할 수 없으니까요. 어릴 적 벵골에서 본 굶주림의 답을, 센은 결국 '자유'에서 찾은 셈이에요. 자유는 듣기 좋은 말일 뿐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살리는 힘이었어요.

센의 역량 접근법은 이름은 어렵지만 속은 단순해요. 누가 잘사는지 볼 때 '얼마나 가졌나'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보자는 거예요. 같은 만 원도 누구에겐 넓은 세상이 되고 누구에겐 닫힌 문이 되니까요. 그래서 센은 돈이나 행복 같은 한 가지 숫자 대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폭을 봤어요. 다음에 어떤 나라나 어떤 삶이 '잘산다'는 말을 들으면 한번 슬쩍 물어보세요. 저 사람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요. 그 물음이 바로 센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