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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길을 걷다 깨진 항아리 조각을 봤다고 해 볼게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누가 이걸 빚었겠지" 하고 생각해요. 항아리가 흙에서 저절로 솟았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으니까요. 모양이 잡힌 물건을 보면 그걸 만든 손부터 떠올리는 거예요.
천 년 전 인도의 한 철학자는 이 평범한 생각을 아주 크게 키워 봤어요. "항아리에 만든 이가 있다면, 산과 강과 하늘이 있는 이 세상에도 만든 이가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바로 우다야나예요.

우다야나는 약 천 년 전, 11세기쯤 인도에서 활동한 철학자예요. 그는 '냐야'라고 부르는 학파에 속했는데, 냐야는 우리말로 하면 '논리'나 '따짐'에 가까워요. 무엇이든 근거를 대고 조목조목 따져서 결론을 내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죠.
당시 인도에서는 신이 있다는 쪽과 없다는 쪽이 치열하게 토론했어요. 우다야나는 신이 있다는 쪽이었는데, 그냥 "믿으세요"라고 하지 않았어요. 대신 『냐야쿠수만잘리』라는 책에서 신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다섯 갈래로 차근차근 늘어놓았어요. 오늘은 그 다섯 가지를 하나씩 풀어 볼게요.

첫째는 '결과물에는 만든 이가 있다'는 거예요. 항아리, 새싹, 산처럼 만들어진 티가 나는 것에는 반드시 만든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세상도 그런 결과물이니,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게 우다야나의 생각이에요. 그 존재를 그는 '이슈바라', 곧 신이라고 불렀어요.
둘째는 '첫 손길'에 대한 거예요. 우다야나는 세상 모든 것이 눈에 안 보일 만큼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 만들어진다고 봤어요. 그런데 레고 조각이 통 안에 가득 있어도 저절로 성이 되지는 않잖아요. 누군가 첫 조각을 집어 붙여야 모양이 생겨요. 그래서 그 작은 알갱이들이 처음 모이려면 그걸 움직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본 거예요.

셋째는 '떠받침'이에요. 공을 손바닥에 올려 두면 누군가 받치고 있어야 떨어지지 않죠. 우다야나는 이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것도 누군가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넷째는 좀 더 재미있어요. 착한 일을 하면 언젠가 좋은 일이 돌아오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일이 돌아온다는 생각이 인도에는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상벌 장부'는 누가 관리할까요? 도서관에서 누가 책을 빌리고 늦게 냈는지 누군가 기록하고 챙기듯이, 착한 일과 나쁜 일을 빠짐없이 기억했다가 공정하게 돌려주는 지혜로운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다섯째는 '말씀'에 대한 거예요. 인도에는 베다라는 아주 오래된 경전이 있어요. 사람들은 거기 담긴 지식을 믿을 만하다고 여겼죠. 그런데 약병에 붙은 설명서가 믿음직한 건 약을 잘 아는 사람이 썼기 때문이에요. 아무도 모르는 글이 저절로 정확해질 수는 없으니까요.
우다야나는 똑같이 따졌어요. 베다가 그렇게 믿을 만하다면, 그 말을 처음 한 누군가, 그것도 모든 걸 아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믿을 만한 말 뒤에는 그 말을 아는 입이 있다는 거죠.

우다야나가 특별한 건 답보다 태도예요. 그는 신을 믿으라고 다그치는 대신, 반대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근거를 하나씩 대며 따졌어요. 마치 법정에서 증거를 내놓듯이요.
그래서 그의 다섯 논증은 신이 있느냐는 질문을 감정이 아니라 따짐의 문제로 바꿔 놓았어요. 흥미롭게도 서양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신을 증명하려 한 토마스 아퀴나스보다 우다야나가 200년쯤 앞서 있었어요. 먼 인도에서 이미 같은 고민을 정교하게 풀고 있었던 거예요.

우다야나의 다섯 논증은 결국 하나의 질문에서 나와요. "잘 만들어진 것에 만든 이가 있다면, 잘 짜인 이 세상에도 만든 이가 있지 않을까?" 만든 이, 첫 손길, 떠받침, 공정한 장부, 믿을 만한 말, 이 다섯 갈래는 모두 같은 질문을 다른 각도에서 비춘 거예요. 그의 답에 꼭 동의하지 않아도 좋아요. 다만 천 년 전 누군가가 믿음을 따짐으로 바꿔 보려 했다는 것, 그 도전만큼은 오래 기억할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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