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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박세당이 펼친 책은 조선 선비라면 절대 펼쳐서는 안 되는 책이었어요.
바로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남화경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보수적인 대형 교회 원로 목사가 은퇴하고 나서 "나는 불경을 새로 해석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아요.
그런데 박세당은 보통 선비가 아니었어요.
과거 시험 최고 등수인 문과 장원으로 급제했고, 조선 왕실 도서관 홍문관과 인사권을 쥔 이조정랑까지 지낸 인물이에요.
쉽게 말해 사법고시를 수석으로 통과하고 청와대 비서관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갑자기 자리를 내던지고 산속으로 들어간 거예요.
40대 무렵, 그는 경기도 수락산 자락에 석천동 마을을 짓고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산속에서 신주도덕경과 남화경주해산보를 완성했어요.
노자와 장자에 자기만의 주석을 단 책이에요.
조선에서 노장 사상은 불교와 함께 '이단'의 대명사였어요.
선비들이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던 사상이었어요.
하지만 박세당은 그 금기에 손을 댔어요.

박세당은 주자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주자를 다시 읽었어요.
그것이 더 위험했어요.
주자, 본명 주희는 12세기 중국 송나라 학자예요.
공자와 맹자의 유학을 체계화해 조선의 국가 이념이 된 성리학을 완성한 인물이에요.
성리학이란 "인간의 본성이 곧 우주의 법칙"이라는 생각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도덕이 공장 출하 설정처럼 설치돼 있다"는 주장이에요.
조선에서 주자의 해석은 그냥 학설이 아니라 정답이었어요.
박세당은 1680년대에 사변록(思辨錄)을 썼어요.
'깊이 생각하고 분별한 기록'이라는 뜻이에요.
이 책에서 그는 유학의 핵심 경전인 사서삼경에 달린 주자의 주석을 하나하나 다시 따졌어요.
그의 출발점은 딱 한 문장이었어요.
"주자도 사람이고 틀릴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거예요.
사내 모든 사람이 신봉하는 CEO의 결정 하나하나에 "이 부분은 틀렸다"고 보고서를 회람시키는 임원이요.
내용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 행위 자체가 조직에서 용납되지 않는 거죠.
그가 주장한 건 단순했어요.
경전은 주자의 눈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직접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조선에서 그 주장이 얼마나 파격이었는지는 이후에 벌어진 일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박세당에게 돌아온 것은 반박 논문이 아니라 화형식이었어요.
1703년, 박세당은 이경석의 신도비명을 썼어요.
이경석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항복하는 조약 문서를 직접 작성했던 관리예요.
박세당은 그 비문에서 송시열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어요.
송시열은 당시 조선 보수 정치 세력인 노론의 영수예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노론에게 거의 성인처럼 추앙받던 인물이에요.
그를 건드린다는 건 한 개인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학계 전체의 권력 구조에 도전하는 것이었어요.
노론의 반격은 빠르게 왔어요.
비판의 내용이 아니라, 박세당이 이미 써놓은 사변록과 노장 주석을 빌미로 삼았어요.
"이 자는 유학의 도를 어지럽힌 도적이다."
사문난적(斯文亂賊)이란 바로 그 낙인이에요.
유학 공동체 전체에 대고 찍는 공개 주홍글씨예요.
숙종은 박세당의 책을 불태우라 명령했어요.
그리고 박세당은 그해 귀양 명령이 내려지기 직전, 옥문 앞에서 숨을 거뒀어요.
한 논문이 동료 학자의 반박이 아닌 명예훼손 소송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학문에 대한 응답이 권력으로 돌아온 순간이었어요.
박세당이 노자에 손을 댄 진짜 이유는 도가가 아니라 의심할 자유였어요.
그가 혼자 산에서 책을 쓰던 그 시절에도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1689년, 둘째 아들 박태보가 인현왕후 폐위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고문 끝에 죽었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직접 지켜봐야 했어요.
그리고 14년 뒤, 이번엔 자신에게 사문난적이라는 낙인이 찍혔어요.
박세당은 죽기 전 이런 취지의 글을 남겼어요.
"나는 주자를 미워한 적이 없다. 다만 스스로 생각했을 뿐이다."
아이러니가 여기 있어요.
노자를 주석하고 이단으로 불린 그가 끝까지 붙들었던 것은 도가의 무위(無爲)가 아니었어요.
무위란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 흐름에 맡기는 것, 쉽게 말하면 '흘러가는 대로 두기'의 철학이에요.
하지만 박세당은 끝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어요.
그가 지킨 건 오히려 유학의 가장 근본적인 태도였어요.
스스로 읽고, 스스로 의심하고, 스스로 결론 내릴 권리요.
회사 방침을 비판하다 해고된 직원이 마지막에 "나는 회사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박세당의 반박은 증오가 아니라 더 깊은 애정에서 나온 것이었어요.
300년이 지난 뒤, 불탄 책들의 생각은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어요.
숙종이 태운 건 종이였고, 의심 자체는 불에 타지 않았거든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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