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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고려의 엘리트 관료가 9년 동안 농민의 흙바닥에서 본 것은 한 왕조의 끝이었어요.
1375년, 정도전은 친원(親元) 정책에 반대하다 전라도 나주 회진현 거평부곡으로 유배를 떠납니다.
거평부곡이란 고려 시대 천민 집단 거주 구역으로, 당시 관료 계층에게는 사회의 바닥 중 바닥이었어요.
과거 시험에 합격한 촉망받는 관료가 하루아침에 흙바닥 생활을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정도전에게 이 9년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어요.
그는 그 시간 동안 권문세족의 토지 독점을 눈앞에서 목격했어요.
권문세족이란 고려 말 왕실과 결탁해 나라 땅의 대부분을 사유지로 집어삼킨 귀족 세력이에요.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일하면서도 수확물의 절반 이상을 귀족에게 바쳐야 했어요.
밥을 굶으면서도 빚이 쌓이는 구조였죠.
회사 임원이 9년 동안 강제로 현장에서 일하다 "이 시스템 전체가 썩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는 상황과 같아요.
하지만 정도전이 달랐던 건 깨달음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는 문제의 원인이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구조 자체라고 봤어요.
개혁으로는 안 된다, 시스템을 통째로 갈아야 한다는 결론이었어요.

왕조를 바꾸자는 말은 무장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가난한 유학자가 변경의 군영을 찾아가 먼저 꺼낸 제안이었어요.
1383년, 유배에서 풀린 정도전은 동북면 함주, 지금의 함흥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여진족과 왜구를 연거푸 격파하며 이름을 날리던 무장 이성계가 있었어요.
정도전은 그를 찾아가 말합니다. "장군, 이 나라는 고칠 수 없습니다. 새로 만들어야 해요."
훗날 정도전은 이 만남을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과 책사 장량의 첫 만남에 비유했어요.
장량은 병법서를 들고 먼저 유방을 찾아가 "당신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한 전략가예요.
정도전이 자신을 장량에 빗댄 거예요.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건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었느냐예요.
오늘날로 치면 무명의 컨설턴트가 떠오르는 사업가를 찾아가 "내가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제안한 것과 같아요.
칼은 이성계가 쥐고 있었지만, 설계도는 정도전이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은 9년 동안 함께 움직여요.
결국 1392년,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세워집니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여기서 시작이에요. 정도전이 만들고 싶었던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요?

정도전은 죽기 몇 달 전 마지막 책을 완성했어요. 그 책 한 권이 500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한 종교를 권좌에서 끌어내렸어요.
1398년, 정도전은 불씨잡변(佛氏雜辨)을 세상에 내놓아요.
불씨잡변이란 불교 교리의 오류를 19개 항목으로 조목조목 반박한 책이에요.
윤회설(죽은 뒤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과 인과설(선행은 복으로, 악행은 화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논리로 정면 반박했어요.
고려는 불교 국가였어요.
절이 세금을 안 내고, 승려가 땅을 가지고, 왕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제사를 지냈어요.
정도전은 그 질서 전체를 "틀렸다"고 선언한 거예요.
그런데 정도전의 설계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같은 시기 완성한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은 새 나라의 통치 원리를 담은 오늘날의 헌법에 해당하는 책이에요.
왕이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 관리는 어떻게 뽑는지, 법은 어떻게 집행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어요.
그 핵심이 놀라웠어요.
"왕은 상징이고, 실제 통치는 재상이 맡아야 한다."
재상이란 오늘날 국무총리와 비슷한 자리인데, 정도전은 왕 위에 시스템을 올려놓으려 했어요.
한 사람이 독재하는 게 아니라 뛰어난 관료들이 법과 제도로 나라를 운영하는 구조예요.
오늘날 대통령제보다 내각제에 훨씬 가까운 발상이었어요.
그리고 이 발상이 결국 그를 죽이게 돼요.

조선을 설계한 사람은 새 왕조가 시작된 지 6년 만에, 그 왕조의 첫 권력투쟁 새벽에 죽었어요.
1398년 8월 26일 새벽, 이방원이 군사를 이끌고 정도전이 머물던 곳을 급습해요.
이방원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왕자예요.
하지만 그는 정도전을 용납할 수 없었어요.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첫째, 정도전은 왕자들이 거느리던 사병, 즉 개인 군대를 해체하려 했어요.
이걸 사병 혁파라고 하는데, 왕자들 입장에서는 권력의 물리적 토대를 통째로 빼앗기는 일이었어요.
둘째, 재상 중심 정치체제는 왕실의 권력을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구조였어요.
이방원은 "왕이 강해야 나라가 산다"고 믿었고, 정도전은 "시스템이 강해야 나라가 산다"고 믿었어요.
두 사람은 나라를 사랑했지만, 전혀 다른 나라를 꿈꾼 거예요.
그 새벽, 정도전은 도망치다 붙잡혀 살해됩니다.
자신이 설계한 나라의 첫 번째 권력 싸움에서 창업자가 쫓겨난 거예요.
이방원은 훗날 조선의 세 번째 왕, 태종이 됩니다.
역사는 대체로 승자가 쓰잖아요.
정도전은 이후 200년 가까이 역적으로 기록됐어요.
그러다 1865년 무렵, 흥선대원군에 의해 복권되어 비로소 이름을 되찾았어요.
정도전이 꿈꿨던 재상 중심의 조선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가 쓴 불씨잡변은 500년 조선을 유교 국가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어요.
자신이 살해당한 나라에서, 자신의 책은 살아남았어요.
어쩌면 그게 정도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결말인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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