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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알 킨디의 가문은 예언자 무함마드와 같은 시대에 아라비아를 호령하던 부족이었어요.
그런 그가 평생을 바친 것은 죽은 그리스인의 책이었죠.
알 킨디(801~873)는 킨다 부족 출신이에요.
킨다 부족은 이슬람 이전부터 아라비아 반도에서 손꼽히는 명문 가문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지금의 이라크 쿠파 지역 총독이었어요.
한국으로 치면 조선 건국 때부터 고관을 배출한 사대부 명문가의 후손인 셈이에요.
그런데 이 명문 집안의 아들은 권력을 쌓는 대신 책 앞에 앉았어요.
아바스 왕조의 세 칼리프, 마문·무타심·와시크 아래서 궁정 학자로 일하면서 그가 평생 파고든 것은 이슬람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교도 그리스인들의 사상이었어요.
조선 명문가 후손이 평생 일본 학자의 책을 번역하며 산 것과 비슷한 그림이에요.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번역이 아니라 단어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알 킨디가 일한 곳은 바이트 알 히크마, 즉 '지혜의 집'이에요.
칼리프 마문이 바그다드에 세운 국립 번역원으로, 세계 각지의 학자들이 모여 그리스어·시리아어·페르시아어 문헌을 아랍어로 옮기던 거대한 지식 공장이었어요.
문제는 아랍어에 '본질', '실체', '형상' 같은 철학 개념을 담을 단어가 아예 없었다는 거예요.
마치 한국어에 '주체'나 '객관'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 서양 철학을 처음 번역해야 했던 상황과 같아요.
메이지 일본의 학자들이 영어 철학 개념을 옮기려고 한자를 조합해 새 단어를 만들어냈듯, 알 킨디도 아랍어를 구부리고 늘리면서 개념을 담을 그릇을 직접 만들었어요.
그렇게 수학·천문학·음악·의학·철학을 넘나들며 약 260편의 논문을 남겼어요.
단순 번역자가 아니었어요.
그는 그리스의 사유 방식 자체를 이슬람 세계 안으로 처음 불러들인 사람이에요.
후세 학자들이 그를 '아랍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그는 책 한 권에 평생의 답을 적어 넣었어요.
진리는 출처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대표작 『제1철학에 관하여(Kitāb al-Falsafa al-Ūlā)』는 알 킨디의 철학 선언문이에요.
제1철학이란 세상이 왜 존재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따지는, 모든 학문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철학이에요.
그 책에서 그는 이렇게 썼어요.
"진리는 누구에게서 오든 받아들여야 한다. 설령 우리와 다른 민족이나 이전 세대에서 왔더라도."
이 문장이 왜 위험했냐면,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그리스 철학은 이교도의 산물이었기 때문이에요.
독실한 무슬림인 알 킨디가 "이교도가 진리를 가질 수 있다"고 공개 선언한 셈이에요.
1950년대 한국에서 "일본 학문도 좋은 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무게를 가진 발언이었어요.
그는 이 입장을 평생 굽히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대가는 훗날 반드시 돌아왔어요.
그가 평생 모은 도서관은 어느 날 갑자기 그의 것이 아니게 됐어요.
847년, 새 칼리프 무타와킬이 즉위했어요.
무타와킬은 '이성으로 신앙을 검증할 수 있다'는 무타질라 신학을 공식 폐기하고 보수 신학으로 돌아선 칼리프였어요.
알 킨디가 평생 기대어 온 지적 분위기 자체가 뒤집힌 거예요.
거기에 정적이 가세했어요.
바누 무사 형제, 알 킨디와 오랫동안 경쟁하던 학자 집단이 그를 모함했고, 결국 알 킨디의 개인 도서관 '킨디야'는 통째로 압수됐어요.
그리고 노년의 알 킨디는 공개 태형을 받았어요.
60년 가까이 한 권 한 권 모은 서재가 어느 날 오후 병사들의 손에 실려 나가는 광경이에요.
세 명의 칼리프를 섬겼던 궁정 최고 학자의 말년이 그랬어요.
그가 그토록 옹호했던 "출처를 가리지 않는 진리"가 결국 그의 책을 빼앗는 명분이 됐어요.
알 킨디가 죽은 뒤, 그의 저작 대부분은 사라졌어요.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아랍어 철학 어휘는 살아남았고, 그 위에 이븐 시나·이븐 루시드 같은 후배 철학자들이 올라섰어요.
두 사람은 훗날 중세 유럽에 아리스토텔레스를 전달한 장본인들이에요.
알 킨디가 없었다면 그 경로 자체가 달라졌을 거예요.
지워진 사람의 흔적이 이렇게 깊이 박혀 있다는 게,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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