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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이크발이 1904년에 쓴 시는 지금도 인도 학교 조회 시간에 울려 퍼져요.
그런데 그가 죽고 9년 뒤, 그 인도는 둘로 갈라졌어요.
무함마드 이크발은 1904년 라호르의 대학 교수 시절, 우르두어로 「사레 자한 세 아차」를 발표했어요.
제목을 직역하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우리의 힌두스탄"이에요.
힌두스탄은 인도를 가리키는 옛 이름이에요.
이 시는 순식간에 인도 전역으로 퍼졌어요.
학교 조회에서 불리고, 행진할 때 울려 퍼졌어요.
지금도 인도 군대와 학교에서 공식 행사 때마다 부르는, 사실상의 비공식 애국가예요.
그런데 이 시를 쓴 사람이 30년 뒤 인도를 분할하는 사상을 설계해요.
학교 응원가를 직접 작곡한 사람이 훗날 그 학교에서 갈라져 나가 라이벌 학교를 세운 격이에요.
어떻게 같은 사람이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었을까요.

이슬람 자아 철학의 시인이 가장 많이 인용한 서양 사상가는, 신을 죽인 니체였어요.
1905년, 이크발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요.
그리고 곧 독일 뮌헨 대학교로 옮겨 박사 논문 「페르시아 형이상학의 발전」을 써요.
페르시아 형이상학이란 중세 이슬람 세계의 철학 전통인데, 신과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이에요.
그런데 이크발은 이 논문을 쓰면서 프리드리히 니체를 깊이 읽었어요.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기존 도덕을 모두 부수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초인"을 꿈꾼 독일 철학자예요.
언뜻 보면 이슬람 신앙과 정반대인데, 이크발은 니체에게서 전혀 다른 것을 읽어냈어요.
"인간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의지로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이 생각이 이크발의 쿠디(Khudi) 개념으로 이어져요.
쿠디는 우르두어로 '자아'라는 뜻인데, 단순히 "나"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나는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존재다"라는 선언에 가까운 말이에요.
무신론 철학자의 책을 읽고 도리어 자기 신앙을 더 단단하게 세운 신학생 같은 역설이죠.
이크발은 니체의 언어로 이슬람을 다시 해석했고, 그 해석이 훗날 한 나라의 건국 정신이 돼요.
1930년 알라하바드 연단에서, 인도 애국시의 시인은 인도를 둘로 나누자고 말했어요.
알라하바드는 인도 북부의 도시예요.
그해 12월 29일, 거기서 무슬림연맹 총회가 열려요.
무슬림연맹은 힌두교도가 다수인 인도에서 무슬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 조직이에요.
이크발은 그 총회 의장으로 연설에 나섰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서 이렇게 말해요.
"나는 북서 인도의 무슬림 다수 지역들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인도의 최종 운명인 것 같습니다."
26년 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우리의 힌두스탄"을 노래했던 사람이, 같은 연단에서 "우리는 따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선언한 셈이에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크발의 생각은 이랬어요.
힌두교와 이슬람교는 단순히 종교가 다른 게 아니에요.
삶 전체를 바라보는 방식, 법을 이해하는 방식,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이 근본부터 달라요.
그러니 하나의 국가 안에서 억지로 섞이는 것보다, 각자의 문명을 꽃피울 공간이 따로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쿠디, 즉 자아를 실현하려면 그 자아가 숨 쉴 수 있는 땅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거든요.
결국 이 연설이 파키스탄 건국 사상의 출발점이 돼요.
이크발은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은 쓰지 않았어요.
그 이름은 나중에 다른 사람이 붙였거든요.
하지만 "무슬림이 스스로 다스리는 나라"라는 개념을 처음 공개 석상에서 설계한 사람은 이크발이었어요.
이크발은 자기가 만든 나라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1938년 새벽, 그는 파키스탄이 태어나기 9년 전에 죽었어요.
1938년 4월 21일, 라호르의 새벽이 밝아올 무렵 이크발은 숨을 거뒀어요.
오랫동안 목과 성대 질환을 앓았고, 마지막 몇 달은 거의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그리고 9년 4개월 뒤인 1947년 8월 14일, 파키스탄이 독립을 선언해요.
이크발이 1930년 연설에서 그렸던 바로 그 나라예요.
이크발의 무덤은 라호르의 바드샤히 모스크 옆에 있어요.
바드샤히 모스크는 무굴 제국 시대에 지어진 거대한 이슬람 사원으로, 라호르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물이에요.
파키스탄 정부는 그를 '무파키르-에-파키스탄(Mufakkir-e-Pakistan)', 즉 '파키스탄의 사상적 아버지'로 공식 추서했어요.
평생 설계도를 그렸지만 준공식 9년 전에 죽은 건축가와 같아요.
깃발도, 국가도, 첫 번째 독립기념일도 그는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크발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 몰라요.
쿠디 철학의 핵심은 "지금 당장의 결과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거였으니까요.
한 사람의 시가 두 나라에서 각각 다른 의미로 불리는 지금, 그 방향이 과연 어디를 가리켰는지는 아직도 질문으로 남아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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