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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대진이 매일 황실 도서관으로 출근하던 그 시기, 그는 같은 책상에서 정통 유학을 살인이라 부르는 책을 쓰고 있었어요.
1773년, 청나라 건륭제가 직접 대진을 불렀습니다.
목적은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이었어요.
사고전서는 당시 청 왕조가 고금의 모든 지식을 하나의 거대한 국가 도서관으로 정리하려 한 최대 규모의 출판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런데 대진은 그 책상 위에서 동시에 다른 책을 완성하고 있었어요.
『맹자자의소증(孟子字義疏證)』이었습니다.
맹자의 글자 하나하나를 파고들어 후대 유학이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를 실증으로 밝히는 책이었어요.
회사 사보를 편집하면서 그 회사가 직원을 착취한다는 내부고발문을 같은 책상에서 쓰는 격이에요.
황제의 이념을 정리하는 일을 하면서, 그 이념을 "살인"이라 부른 셈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대진은 평생 한 번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이었어요.
대진은 안휘성 휴녕의 가난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종이 살 돈이 없어서 빌린 책을 손으로 베껴 공부했어요.
하지만 과거 시험에는 여섯 번 도전해 모두 떨어졌습니다.
과거 시험은 오늘날로 치면 고위 공무원 시험과 명문대 입시를 합쳐놓은 것으로, 합격하면 국가 관료 자리가 보장됐어요.
그 시험에 여섯 번 떨어진 사람에게 사회는 보통 문을 닫습니다.
그런데 대진은 시험 공부 대신 다른 길을 팠어요.
수학, 음운학, 천문학, 고대 문헌 고증.
음운학이란 옛 글자의 발음과 어원을 추적하는 학문인데, 대진은 이 분야에서 전국에 소문날 만큼 실력을 쌓았어요.
결국 50세에 황제가 직접 그를 불렀습니다.
학위 없는 사람이 황실 편찬위원이 된 거예요.
그리고 죽기 두 해 전, 황제는 그에게 진사 동등(進士同等) 자격을 하사했습니다.
진사란 과거 최종 합격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인데, 시험을 거치지 않고 그 대우를 받은 셈이에요.

대진이 본 청나라 사회에서 리(理)라는 단어는 글자가 아니라 채찍이었어요.
주자학은 당시 청나라의 공식 이념이었습니다.
송나라 학자 주희가 체계화한 사상으로, 1200년대부터 조선과 중국을 지배한 유학의 정통 흐름이에요.
그 핵심 가르침이 바로 "존천리 멸인욕(存天理, 滅人欲)"이었습니다.
하늘의 리(理), 즉 우주의 도덕 법칙을 보존하고, 인간의 욕망은 없애라는 말이에요.
쉽게 말하면 "본능과 감정은 나쁜 것, 도덕 원칙은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입니다.
스마트폰 공장 출고 설정처럼 인간에게 도덕이 설치돼 있고, 그 설정값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두 오류라는 발상이에요.
대진은 이 도식을 정면으로 부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어요.
"혹독한 관리는 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후대 유학자는 리로 사람을 죽인다(酷吏以法殺人, 後儒以理殺人)."
법보다 리가 더 무서운 이유가 있어요.
법은 최소한 조문이라도 있지만, 리는 그 기준이 해석하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거든요.
"원칙대로 하자"는 말이 조직 안에서 가장 무서운 권력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대진이 직접 본 사회에서는 시집살이를 못 견뎌 도망친 며느리가 "리에 어긋났다"는 이유로 처벌받았어요.
굶주린 자의 먹고 싶다는 욕구조차 죄가 됐습니다.
그래서 대진은 방향을 바꿨어요.
인간의 욕(欲)과 정(情), 즉 욕망과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리는 그 자연 안에 이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리가 인간 위에서 군림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삶 속에 리가 있다는 거예요.
700년간 유지된 주자학의 이분법을 그는 단 한 줄로 뒤집었습니다.
대진이 죽고 한 세기가 지나서야, 그가 쓴 한 문장이 청나라 자체를 흔들기 시작했어요.
대진은 1777년 5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맹자자의소증』은 정통 유학자들에게 곧 "이단"으로 찍혔고, 한 세기 가까이 거의 읽히지 않았어요.
생전에 그 책이 불러온 건 비난뿐이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말 청나라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양계초(梁啓超)는 청말 개혁 운동을 이끈 지식인으로, 서양 근대 사상과 중국 전통을 연결하려 한 인물이에요.
그가 대진을 다시 꺼냈습니다.
20세기 초 5·4 운동 무렵, 호적(胡適)은 대진을 "중국의 르네상스를 시작한 사람"이라 평했어요.
5·4 운동은 1919년 중국 청년들이 전통 유교 질서와 제국주의에 동시에 저항한 문화 운동입니다.
그 운동의 논거로 대진의 "리로 사람을 죽인다"는 문장이 정확히 맞아 들어갔어요.
노신(魯迅) 역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유교 도덕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사회를 소설로 고발했는데, 그 문제의식의 뿌리를 대진에서 찾는 연구자들이 많습니다.
생전엔 황제 옆에서 일하면서도 이단 취급을 받고, 죽어서 100년간 잊혔다가, 다음 세기의 혁명가들이 선언문으로 꺼내 든 책.
대진이 그 책상에서 무슨 마음으로 그 문장을 썼는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 문장이 결국 닿은 곳은 황제의 서재가 아니라, 거리로 나선 청년들의 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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