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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이븐 시나는 자서전에 자기가 한 책을 40번 읽고도 이해 못 했다고 직접 적었어요.
그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었고, 결국 그를 구한 건 시장에서 산 3디르함짜리 다른 사람의 책이었어요.
이븐 시나는 10세기 페르시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의학자로, 이슬람 역사가 배출한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인물이에요.
그런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통째로 외웠는데도 한 줄도 이해를 못 했다고 고백한 거예요.
수능 만점자가 어떤 참고서를 40번 풀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러다 부하라의 시장을 돌던 중, 서점 상인이 은화 3닢에 내놓은 얇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어요.
알 파라비의 주석서 《형이상학의 목적에 관하여》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풀어쓴 해설서였어요.
이걸 한 번 읽자 모든 것이 풀렸다고, 이븐 시나가 자서전에 직접 남겼어요.
그래서 후세 학자들은 알 파라비를 '제2의 스승'이라 불렀어요.
첫 번째 스승은 아리스토텔레스 본인이고요.
이슬람 최고의 천재가 혼자 읽어서 못 이해한 것을, 알 파라비의 책 한 권이 풀어냈으니 그 호칭이 과하지 않아요.
알 파라비가 술탄의 궁정에서 받아간 것은 하루 은화 4닢이 전부였어요.
사이프 알 다울라는 10세기 알레포를 다스린 함단 왕조의 술탄이에요.
시인과 학자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기로 유명했던 인물인데, 직접 알 파라비를 궁정으로 불러 거의 무한에 가까운 지원을 제안했어요.
삼성 회장이 "연봉 100억에 집까지 줄 테니 우리 회사로 와라" 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에요.
하지만 알 파라비가 받아간 건 하루 은화 4닢뿐이었어요.
나머지는 모두 거절했고, 비단 옷 대신 수피의 거친 양털 옷만 입었으며, 정원에서 잠을 잤다고 전해져요.
수피란 이슬람 신비주의 수행자를 말하는데, 세속의 부와 명예를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삶을 택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이 선택이 강요가 아니었다는 게 포인트예요.
후원자인 술탄이 더 받아가길 원했는데, 알 파라비 본인이 거절한 거예요.
당대 최고 학자가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잘라낸 거예요.
알 파라비는 이슬람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상도시 설계서를 썼어요.
그리고 평생 어떤 도시도 자기 집으로 삼지 않았어요.
《알-마디나 알-파딜라》, 직역하면 '덕의 도시'예요.
플라톤이 《국가》에서 이상적인 나라를 그렸듯이, 알 파라비는 이 책에서 철학자이자 예언자가 다스리는 이상 도시를 정밀하게 설계했어요.
이슬람 정치철학 역사에서 지금도 핵심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에요.
그런데 정작 알 파라비 본인은 바그다드, 알레포, 다마스쿠스, 카이로를 평생 떠돌았어요.
집도 없었고, 가족도 없었고, 공식 직책도 없었어요.
가장 정교한 도시 이론서를 쓴 사람이 자기 도시 하나 없이 산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이상적인 가정'에 대한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사람이 평생 결혼도, 자식도, 집도 없이 여관을 전전한 셈이에요.
책 속의 이상도시는 종이 위에만 있었어요.
알 파라비 자신은 늘 길 위에 있었고요.
950년 어느 날, 80세의 알 파라비는 다마스쿠스 외곽의 길에서 강도들에게 죽었어요.
챙겨갈 만한 게 거의 없었어요.
그가 아스칼론으로 향하던 길이었어요.
아스칼론은 지금의 이스라엘 남부 해안에 있던 도시예요.
가진 것은 옷가지와 책뿐이었다고 전해지는데, 강도들이 그를 죽인 뒤 가져간 것도 별로 없었을 거예요.
다마스쿠스의 작은 묘에 묻혔고, 술탄 사이프 알 다울라가 직접 장례를 주관했어요.
황금을 거절하고 양털 옷만 입던 그 철학자의 마지막을, 그가 거절했던 술탄이 보살핀 거예요.
이슬람 문명에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져다준 사람, 이븐 시나의 스승, 제2의 스승이라 불린 사람이 길거리 강도에게 죽었어요.
컴퓨터 산업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사람이 노년에 길에서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쓰러진 것과 비슷한 충격이에요.
그가 평생 종이 위에 그린 이상도시는 그를 보호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알 파라비는 이 결말을 알면서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거예요.
하루 4디르함만 받고 정원에서 자던 사람이, 안전한 궁정 침대를 마다하고 길을 택한 사람이니까요.
그는 왜 궁정에 머물지 않았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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