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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교토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 가문의 장남이, 어느 날 가업을 동생에게 떠넘기고 책상 앞에 앉았어요.
이게 그냥 비유가 아니에요.
1627년 태어난 이토 진사이는 실제로 교토 최대 포목상 집안 츠루야(鶴屋)의 장남이었어요.
당시 교토는 일본 최대의 상업 도시였어요.
거상 집안의 장남이라는 건 오늘날로 치면, 부모가 수십 년에 걸쳐 키운 사업체를 고스란히 물려받을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진사이는 11살에 주자학을 처음 접하고 나서, 그 운명의 길을 거부했어요.
주자학이 뭔지 먼저 알아야 해요.
13세기 중국 학자 주희가 체계화한 유학으로, "우주의 법칙과 인간의 도덕은 사실 하나다"라는 거대한 철학 체계예요.
스마트폰 공장 출고 설정처럼, 태어날 때부터 도덕이 인간에게 설치돼 있다고 보는 사상이에요.
이 사상에 완전히 사로잡힌 진사이는 "나는 책을 읽겠다"는 말 한마디로 가업을 동생들에게 넘겼어요.
교토의 거상 집안에서 장남이 가업을 거절하는 건 가문 자체를 등지는 선언이나 다름없었어요.
그래도 그는 책상 앞에 앉았어요.
진사이는 30대 거의 전부를 한 칸짜리 방에서 보냈어요.
28세 무렵 그는 집 밖으로 나가는 걸 거의 멈췄어요.
가족의 핀잔, 가난, 우울이 한꺼번에 찾아왔어요.
그런데 바로 그 방 안에서 진사이는 이상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어요.
주자학의 핵심 개념인 '리(理)'가 문제였어요.
리란, 세상 모든 사물에 내재된 보편적 법칙이라는 개념이에요.
주자학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려면 이 리를 인식해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진사이는 이 논리가 현실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확신을 점점 굳혀 나갔어요.
"리를 깨달으면 지금 내 옆 사람에게 친절해지는 것과 무슨 상관인데?" 하는 물음이었어요.
그 물음 하나가 10년을 잡아먹었어요.
인생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30대를 그는 한 칸짜리 방에 바쳤어요.
하지만 그 침묵의 10년이 그를 일본 사상사에 이름을 남긴 학자로 만들었어요.
진사이가 정면으로 부정한 학설은 그 시대 일본을 통치하던 이념 그 자체였어요.
1662년 무렵, 진사이는 교토에 사숙 고기도(古義堂)를 열었어요.
'고대의 본래 뜻을 찾는 집'이라는 이름부터 선전포고나 다름없었어요.
당시 일본을 지배하던 도쿠가와 막부는 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공식 채택한 상태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정부가 국정 교과서를 지정해 놓은 상황에서 동네 학원이 "그 책은 틀렸다"며 자기 교재로 새로 가르치는 셈이에요.
그런데 진사이는 그걸 했어요.
그의 주장은 단순했어요.
주희가 만든 추상적 '리' 대신, 공자와 맹자가 직접 쓴 『논어』와 『맹자』의 원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특히 그는 인(仁)을 완전히 다르게 정의했어요.
인은 유학의 핵심 덕목이에요.
주자학에서는 우주의 법칙에서 도출되는 형이상학적 원리로 설명했어요.
하지만 진사이는 달랐어요.
"인은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감정이에요. 형이상학이 아니라 사랑이에요."
그 말은 단순한 재해석이 아니었어요.
주자학의 거대한 철학 체계 전체를 부정하는 발언이었어요.
3,000명의 제자를 둔 일본 최고의 학자가, 평생 단 하나의 관직도 받지 않았어요.
고기도는 진사이 생전에 약 3,000명의 제자가 몰린 당대 일본 최대 사학으로 성장했어요.
소문이 퍼지자 전국의 다이묘, 즉 각 지역을 지배하던 봉건 영주들이 그를 자기 영지의 학자로 모셔가려 했어요.
진사이는 단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출사, 즉 권력자를 섬기며 관직에 나가는 것은 당시 학자가 가난에서 벗어날 거의 유일한 길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대기업이 수억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는데 평생 동네 학원에서 가르치며 살기를 택한 거예요.
거상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업을 거절했고, 10년간 칩거하며 가난을 버텼고, 최고의 명성을 얻은 뒤에도 또다시 거절했어요.
그는 170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토의 고기도를 한 번도 떠나지 않았어요.
사숙은 아들 이토 도가이가 이어받아 계속되었어요.
진사이에게 학문은 권력이나 부와 교환할 수 있는 자본이 아니었어요.
그의 평생 질문은 단 하나였어요.
"공자가 진짜 하려던 말이 뭐였을까?"
그 질문에 답하려고 그는 교토의 한 방에서 78년을 살았어요.
지금도 그 답이 완전히 정해졌는지는 모를 일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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