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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붓다고사는 자기가 평생 외운 베다 경전을, 토론 한 번 진 그날 모두 버렸어요.
5세기 초 인도 마가다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베다에 통달한 브라만이었어요.
베다는 고대 인도의 종교 경전이자 학문 체계 전체인데, 오늘날로 치면 의대를 수석 졸업하고 전문의까지 딴 것보다 더한 지적 자산이에요.
그는 그 지식을 들고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토론을 벌이는 떠돌이 지식인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불교 승려 레와따와 토론을 붙었어요.
레와따는 상좌부 불교의 고참 비구였는데, 상좌부 불교는 기원전 3세기부터 이어진 가장 오래된 불교 분파예요.
오늘날 태국·스리랑카·미얀마에서 믿는 전통 불교와 같은 계통이에요.
붓다고사는 그 자리에서 졌어요.
그리고 바로 그날,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레와따의 제자가 됐어요.
30년 경력의 변호사가 법정에서 한 번 진 뒤 그날로 사표를 내고 상대편 법무법인에 신입으로 들어가는 것과 똑같아요.
하지만 붓다고사가 진짜 특이한 건 그 다음부터예요.
붓다고사가 스리랑카로 건너간 이유는 자기 책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책을 쓰지 않기 위해서였어요.
출가한 뒤 그는 불교 사상을 깊이 파고들었어요.
충분히 자기 사상을 정리한 책을 쓸 수 있는 위치가 됐죠.
하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어요.
대신 배를 타고 스리랑카로 건너갔어요.
목적지는 마하비하라였는데, 스리랑카 고대 수도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대사원이에요.
상좌부 불교의 본산이자 당시 가장 방대한 불교 문헌이 보관된 곳이었어요.
그곳에는 수백 년간 쌓인 옛 주석들이 싱할리어로 보존돼 있었어요.
싱할리어는 스리랑카 고유의 언어라 인도 학자들은 읽을 수가 없었죠.
붓다고사는 그 주석들을 팔리어로 옮기려고 바다를 건넌 거예요.
팔리어는 부처가 직접 가르친 언어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던 언어로, 불교 경전의 국제 표준어 같은 역할을 했어요.
박사학위를 막 받은 연구자가 자기 논문을 쓰는 대신 50년 된 다른 사람의 노트를 번역하는 일에 평생을 걸겠다고 외국으로 이민 가는 셈이에요.
그것도 완전히 자발적으로요.
붓다고사는 60만 자짜리 책을 쓰면서, 자기 의견은 단 한 줄도 적지 않았어요.
마하비하라에서 그가 쓴 책이 『청정도론(Visuddhimagga)』이에요.
'정화의 길'이라는 뜻으로, 불교 수행과 교리 전체를 체계화한 책이에요.
오늘날까지 상좌부 불교 전통에서 수행자가 반드시 읽어야 할 교과서로 꼽혀요.
그런데 이 책에서 붓다고사는 단 한 번도 "내 생각은"이라고 쓰지 않아요.
모든 문장은 "옛 스승들께서 말씀하신다" 또는 "전해 내려오기를"로 시작해요.
60만 자 전체가 자기 목소리가 아닌 남의 목소리를 옮긴 거예요.
여기서 반전이 있어요.
'붓다고사(Buddhaghosa)'라는 이름 자체가 '부처의 목소리'라는 뜻이에요.
그는 평생 자기 목소리를 지우는 일을 했는데, 정작 그 이름을 달고 살았어요.
60만 자짜리 보고서를 1년 넘게 쓰는데, 그 안에 "제가 분석하기로는" 같은 표현이 단 한 번도 안 나온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철저한 일인지 짐작이 가요.
그것도 틀린 말을 옮긴 게 아니라, 가장 정확하게 옮겼다는 평을 받으면서요.
붓다고사는 자기 이름을 지우려 했지만, 결국 옛 스승들의 이름이 그의 책 안에서만 살아남게 됐어요.
그가 옮긴 팔리어 번역이 너무 완벽하다는 평을 받자, 마하비하라의 승려들은 생각을 바꿨어요.
원본 싱할리어 주석을 더 이상 베껴 보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거예요.
붓다고사의 번역본이 있으니 원본은 없어도 된다는 논리였어요.
그렇게 수백 년이 흐르자, 원본 싱할리어 주석은 단 한 권도 남지 않았어요.
오늘날 우리가 읽는 상좌부 불교의 옛 주석은 전부 붓다고사의 팔리어 번역본이에요.
원본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그의 번역 말고는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자기 의견을 지우려고 평생 옛 스승들의 말만 옮겼는데, 그 작업 때문에 오히려 옛 스승들의 원본이 모두 사라졌어요.
자기 목소리를 지우려는 노력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두 그의 목소리로 바꿔버린 거예요.
어떤 번역가가 너무 잘 옮겨서 훗날 사람들이 원작 대신 번역본만 찾다가 결국 원작이 도서관에서 사라지는 일과 같아요.
붓다고사는 무명이 되려 했지만, 그 이름이 1600년을 넘게 살아남았어요.
그가 평생 지우려 했던 자기 목소리가 오히려 가장 오래 남은 목소리가 됐다면, 그것을 그는 알고 그렇게 한 걸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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