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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일본이 항복한 지 42일 뒤, 한 철학자가 감옥에서 죽었어요.
그를 가둔 정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어요.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가 라디오로 항복을 선언했어요.
전쟁이 끝났고, 전쟁을 일으킨 정부도 무너졌어요.
그런데 미키 기요시는 도쿄의 도요타마 형무소에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그는 9월 26일에 죽었어요.
사인은 옴(疥癬)이었어요.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기생충에 감염되는 병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온몸이 진물러요.
졸업식이 끝났는데 교실에 갇혀 있다가 그 안에서 죽은 학생 같은 이야기예요.
전쟁이 끝나면 사상범도 자동으로 풀려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GHQ(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정치범 석방 지령을 내린 건 10월 4일이었어요.
미키가 죽고 나서 8일 뒤였어요.

미키 기요시를 죽인 것은 그의 책이 아니라, 그의 우정이었어요.
1945년 3월, 미키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됐어요.
치안유지법이란 정부에 반하는 사상이나 행동을 처벌하는 법으로, 한마디로 "정부 마음에 안 드는 생각을 하면 잡아가도 된다"는 법이었어요.
그런데 미키의 죄목은 위험한 사상을 퍼뜨렸다는 게 아니었어요.
공산당원이었던 옛 친구 다카쿠라 데루가 수배 중이었어요.
그 친구가 미키의 집 문을 두드렸고, 미키는 며칠 재워줬어요.
그게 전부였어요.
수배 중인 대학 동기가 새벽에 찾아왔을 때 문을 열어줄 것인가.
그 선택 하나로 인생이 끝나는 상황이었어요.
일본 최고의 철학자 중 한 명이 감옥에 간 이유는, 거대한 이념 투쟁이 아니라 옛 친구에게 이불 한 채를 내준 것이었어요.

미키 기요시는 일본 군부에 자문했던 철학자였어요.
그리고 바로 그 일본에 의해 감옥에서 죽었어요.
미키는 니시다 기타로의 수제자였어요.
니시다 기타로는 일본 근대 철학의 기초를 세운 사람으로, 서양 철학을 동양적 사유로 재해석한 교토학파를 창시했어요.
그 학파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로 꼽혔던 게 미키였어요.
1930년대 후반, 미키는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의 싱크탱크인 쇼와연구회에 참여했어요.
싱크탱크란 정부에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두뇌 집단이에요.
미키는 그 안에서 '동아협동체론'을 다듬었어요.
동아협동체론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논리예요.
결과적으로 당시 일본의 팽창 정책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이 됐어요.
회사 경영진 옆에서 자문하던 사람이 그 회사에 의해 가장 먼저 잘리는 것처럼, 체제에 가까이 간 지식인이 오히려 더 위험해졌어요.
군부가 그를 필요로 할 때는 가까이 두었고, 필요가 없어지자 그대로 버렸어요.
미키가 기여했던 체제와, 그를 가둔 체제는 같은 것이었어요.

그가 살아서 못 한 일을, 그의 시신이 해냈어요.
미키의 옥사 소식이 외신을 통해 퍼졌어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철학자가 감옥에 방치되다 죽었다는 뉴스는 GHQ에 충격을 줬어요.
GHQ는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 최고사령부로, 패전 이후 일본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던 기관이었어요.
GHQ는 1945년 10월 4일 인권지령을 발표했어요.
치안유지법을 폐지하고, 정치범을 즉시 석방하라는 명령이었어요.
그 결과 수천 명의 사상범이 감옥에서 나왔어요.
살아 있을 땐 체제 안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죽음으로써 그 체제를 흔드는 계기가 됐어요.
회사의 부조리를 안에서 바꾸려던 직원이 죽고 나서야 그 회사의 규정이 바뀐 셈이었어요.
항복 선언 이후 42일 동안, 아무도 그를 찾아가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나와도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42일이 그의 마지막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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