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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사무라이의 도덕을 가르친 사람이, 정작 막부에 의해 9년간 입을 봉인당했어요.
1666년, 야마가 소코(山鹿素行)는 책 한 권을 출판한 직후 체포 명령을 받았어요.
책 이름은 「성교요록(聖教要録)」, 당시 일본 정부의 공식 학문이던 주자학을 정면으로 비판한 강의록이에요.
막부는 즉시 그를 아코 번으로 유배 보냈어요.
회사 공식 매뉴얼을 "이건 틀렸어요"라고 발표한 책을 낸 직원이, 9년간 지방으로 격리된 것과 같아요.
그런데 역설이 있어요.
그 격리된 사람이 바로 '사무라이답게 사는 법'의 표준을 만든 사람이에요.
사도(士道)는 "무사가 마땅히 걸어야 할 도리"예요.
오늘날 우리가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에요.
그 창시자가 막부에 의해 9년간 갇혔다는 것,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해요.
그는 주자학의 천재로 자랐고, 결국 주자학을 부수기 위해 펜을 들었어요.
야마가 소코는 9살에 하야시 라잔(林羅山)의 문하에 들어갔어요.
하야시 라잔은 도쿠가와 막부의 어용 학자, 즉 정부 공식 철학자였어요.
주자학(朱子学)을 일본 국가 이념으로 확립한 인물이에요.
주자학은 중국 송나라의 주희가 집대성한 유학이에요.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게 설계돼 있다"는 걸 철학적으로 증명하려 한 학문인데, 스마트폰으로 치면 공장 출고 때부터 도덕이 깔려 있다는 거예요.
9살짜리 신동이 그 최고 권위자 밑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어요.
그런데 40대가 됐을 때, 뭔가가 바뀌었어요.
소코는 "주희의 해석은 공자의 본뜻이 아니에요"라고 선언했어요.
그리고 직접 공자와 주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학(古学)을 주장했는데, 이건 "원전을 직접 읽자, 중간 해석자를 믿지 말자"는 입장이에요.
회사 창업자의 직속 후계자로 키워진 사람이, 자기 손으로 "창업자의 철학이 잘못 전달되고 있어요"라고 발표한 셈이에요.
그 발표의 결과가 바로 9년 유배였어요.
전쟁이 끝나자 사무라이는 쓸모없어졌어요. 야마가 소코는 그들에게 새로운 일을 만들어줬어요.
에도 시대(1603~1868)는 평화의 시대예요.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통일한 뒤 전국적인 전쟁은 사실상 사라졌어요.
그런데 사무라이는 여전히 사회 최상위 계급으로 존재했어요.
문제는 직업이에요.
싸울 전쟁이 없는 군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이 정체성 위기를 소코는 「산록집(山鹿語類)」에서 정면으로 다뤘어요.
그의 답은 이랬어요.
"무사는 싸우는 사람이 아니에요. 농민·장인·상인 위에 서서 도덕적 모범을 보이는, 세 계급의 스승이에요."
칼 대신 윤리로 존재 이유를 만든 거예요.
소코가 보기에 사무라이의 가치는 전투력에서 오는 게 아니라, 얼마나 올바르게 사느냐에서 왔어요.
일감이 사라진 직군이 "우리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사회의 윤리 기준을 세우는 사람"이라고 정체성을 다시 쓴 것과 같아요.
그리고 그 재정의는, 막부가 그를 아코 번으로 보내면서 뜻밖의 방식으로 증명됐어요.
막부가 야마가 소코를 9년간 가둔 그 땅에서,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복수극의 주역이 자라고 있었어요.
소코가 유배된 곳은 아코 번이었어요.
그는 9년 동안 그곳 가신들에게 사도를 직접 가르쳤어요.
유배지가 강의실이 된 거예요.
그 강의를 들은 인물 중 하나가 오이시 구라노스케(大石内蔵助)예요.
아코 번의 가로, 즉 번주 다음 서열의 실권자였어요.
그리고 1702년, 그가 지휘한 사건이 일본 전체를 뒤흔들었어요.
아코 사건은 이렇게 시작했어요.
에도성에서 모욕을 당한 아코 번 번주가 칼을 뽑아 상대를 공격했고, 그 죄로 할복 명령을 받았어요.
번주가 죽자 번은 해체됐고, 47명의 무사는 하루아침에 주군도 녹봉도 없는 로닌(浪人), 즉 떠도는 무사가 됐어요.
하지만 이들은 흩어지지 않았어요.
오이시의 지휘 아래 47명은 정확히 1년 9개월을 기다렸다가, 번주를 죽음으로 몬 원수의 저택을 한밤중에 습격해 복수를 완수했어요.
결국 그들도 할복으로 생을 마쳤지만, 일본인들은 그것을 패배가 아니라 사도의 완성으로 받아들였어요.
소코가 유배지 아코에서 9년간 심은 씨앗이, 30여 년 뒤 일본인의 집단 기억을 결정짓는 사건으로 자라난 거예요.
막부가 그를 가두려 했던 그 땅이, 결국 사도의 증명 장소가 됐어요.
야마가 소코는 그 복수극이 일어나기 약 17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살아서 1702년의 아코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해져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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