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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윤휴가 던진 한 줄짜리 의문이 그를 사형장까지 끌고 갔어요.
"천하의 이치를 어찌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른단 말인가."
주자(朱熹)는 12세기 송나라 시대에 유교 철학을 집대성한 학자예요.
그의 해석은 조선에서 학문의 정답지이자 과거시험의 표준이었어요.
그걸 의심한다는 건, 시험 감독관에게 "이 기준 자체가 틀렸어요"라고 외치는 것과 같았어요.
윤휴(1617-1680)는 주자를 미워한 게 아니에요.
그는 주자도 한 명의 학자라고 봤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17세기 조선에서 그 평범한 전제 하나가 금기였어요.
모두가 창업자의 매뉴얼을 성경처럼 따르는 회사에서, 신입이 "이거 다시 써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 순간이에요.
잘리는 게 아니라, 결국 죽게 되는 이야기예요.

윤휴는 주자의 해석에 토를 단 게 아니에요.
그는 자기 붓으로 그 책을 다시 썼어요.
윤휴가 직접 손댄 건 사서(四書)였어요.
사서는 유교 교육의 핵심 교재 네 권이에요.
그 가운데 『중용(中庸)』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을 다룬 경전이에요.
윤휴는 이 경전들에 자기 주석을 새로 달아 『독서기(讀書記)』로 묶었어요.
『대학(大學)』과 『효경(孝經)』도 마찬가지였어요.
당시 주자의 주석은 참고서가 아니라 정답지였어요.
그걸 다시 쓴다는 건, 수능 모범답안 위원회를 향해 "이 정답 틀렸어요"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았어요.
그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진짜 문제는, 주자의 해석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글로 남겼다는 사실 자체였어요.
그 가능성을 인정하는 순간, 조선 학문의 기반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에요.

송시열이 입에 올린 네 글자가 윤휴의 학문적 사망 선고였어요.
송시열(우암 송시열)은 17세기 조선 성리학의 정신적 지도자예요.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원리를 유교 방식으로 설명하는 학문으로, 조선의 통치 이념 그 자체였어요.
그 학문의 최고 권위자가 윤휴에게 붙인 딱지가 사문난적(斯文亂賊)이었어요.
사문난적은 유학의 정통을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학계의 원로가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람은 우리 학문의 적이다"라고 선언하는 거예요.
그런데 조선에서 이 말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었어요.
정치적으로도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어요.
두 사람은 원래 학문적으로 교류하던 사이였어요.
한때 가까웠던 사람이 어느 날 공개 석상에서 "너는 우리 학문의 적이야"라고 선언하는 거예요.
그 순간부터 윤휴는 학자로서 이미 죽은 사람이 됐어요.

1680년 봄, 윤휴는 사약을 마셨어요.
그가 한 일은 책 한 권을 자기 식으로 읽은 것뿐이었어요.
그해 경신환국(庚申換局)이 일어났어요.
경신환국은 남인 세력이 실각하고 서인이 집권한 정치 교체 사건이에요.
윤휴는 남인 계열이었고, 권력이 바뀌는 순간 표적이 됐어요.
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사사(賜死)였어요.
사사는 임금이 독약을 내려 마시게 하는 형벌로, 양반 신분에게 적용되는 가장 무거운 처벌이었어요.
죽기 전 윤휴는 이렇게 한탄했다고 전해져요.
"조정이 어찌 유학자를 죽이는가."
역모가 있었던 게 아니에요.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니에요.
다른 해석을 했다는 이유 하나였어요.
학회에서 새 주석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사형을 집행하는 광경이에요.
그게 17세기 조선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에요.
윤휴의 이름이 복권된 건, 그가 죽고 한참이 지난 뒤였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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