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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임성주는 자신을 키운 학파의 핵심 교리를 결국 부정했어요.
평생 그 교리를 배우고, 그 학파의 최고 스승 밑에서 공부하고, 그 사상의 언어로 생각했던 사람이요.
임성주(1711-1788)는 조선 후기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났어요.
노론은 당시 조선 정치와 학문을 지배하던 최대 붕당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최상위 명문대 학벌 네트워크가 정치권과 학계를 동시에 장악한 것과 비슷한 위상이었어요.
그는 당대 노론 학문의 정점, 이재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어요.
이재는 영조 시대 노론 학맥의 종장, 그러니까 그 학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스승이었어요.
그 문하에서 배운다는 건 조선 지식인 사회의 정중앙에 서 있다는 의미였어요.
임성주는 특히 호락논쟁 한복판에서 학문을 시작했어요.
호락논쟁은 18세기 성리학자들이 벌인 대논쟁으로, 핵심 질문은 하나였어요.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은 같은가, 다른가?"
그는 처음에는 낙론 계열로 출발했어요.
낙론은 서울 쪽 학자들을 중심으로,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같다고 주장하는 쪽이었어요.
하지만 그건 시작이었을 뿐이에요.
가톨릭 신학교에서 평생 교리를 배운 사람이 어느 날 신학교 교수에게 "핵심 교리가 틀렸어요"라고 공개 편지를 보냈다고 상상해 보세요.
임성주가 한 일이 정확히 그런 성격이었어요.

임성주의 결론은 한 줄이었어요.
"세상의 근본은 원리가 아니라 기 하나뿐이에요."
정통 성리학이 가르치는 핵심 명제는 성즉리(性卽理)였어요.
'성즉리'란 인간의 본성은 곧 우주의 보편 원리인 '이(理)'와 같다는 주장이에요.
스마트폰 공장 출고 설정처럼, 태어날 때부터 도덕 원리가 설치돼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임성주는 정반대로 말했어요.
그의 주장은 성즉기(性卽氣), 인간의 본성은 곧 '기(氣)'라는 거예요.
'기'란 우주 만물을 이루는 구체적인 에너지, 오늘날로 치면 물질과 힘을 합쳐놓은 것에 가까운 개념이에요.
학교에서 "설계도가 먼저고 재료는 나중"이라고 배웠는데, 임성주는 "재료 자체가 설계도를 만들어낸다"고 뒤집은 거예요.
정통 성리학에서 '이'는 설계도, '기'는 재료였어요.
그런데 임성주는 설계도 자체가 재료의 작동 방식에서 나온다고 선언했어요.
이것이 기일원론(氣一元論)이에요.
기일원론이란 세상의 근본 원리는 '기' 하나뿐이며, '이'는 그 기가 움직이는 방식을 설명하는 이름일 뿐이라는 사상이에요.
'이'가 따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 학파 안에서 이 말을 꺼내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어요.
평생 '이'를 우주의 최고 원리로 가르쳐온 스승들 앞에서, "그 원리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선언한 거니까요.
결국 그것은 학문적 용기가 아니라 거의 배신으로 읽혔어요.

임성주의 학문은 그의 집 안에서 누이에게 그대로 전수됐어요.
임윤지당(1721-1793)은 임성주의 여동생이에요.
조선 시대 여성에게 학문은 거의 금지나 다름없었어요.
그런데 임윤지당은 오빠 임성주에게 직접 성리학을 배웠어요.
그리고 그녀는 철학 저작을 남겼어요.
『윤지당유고』라는 책이 그 결과예요.
조선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성리학 논변을 남긴 건, 당시로선 거의 전례 없는 일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어느 정도 무게냐고요?
1750년대 조선에서 여성이 철학 논문을 쓰는 건, "여자는 운전 금지"인 사회에서 누이가 F1 드라이버가 된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임성주의 태도였어요.
그는 누이의 글을 진지하게 읽었어요.
토론 상대로 대했고, 학문적 동료로 인정했어요.
가장 보수적인 노론 명문가 출신 학자가 여성 철학자를 키웠어요.
그것도 자기 누이를요.
임성주라는 사람의 폭을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임성주가 스승의 학설을 부정한 대가는 평생의 외로움이었어요.
하지만 결국 조선 성리학의 지도를 새로 그린 사람도 그였어요.
임성주는 평생 관직을 거의 사양했어요.
그는 충청도 산골 마을 녹문(鹿門)에 은거하며 학문에만 몰두했어요.
그의 호 '녹문'도 바로 거기서 나온 거예요.
사후 그의 저작들이 묶여 『녹문집』이 나왔어요.
그러자 후대 학자들은 비로소 그를 다시 봤어요.
조선 후기 기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재평가가 이뤄졌어요.
그의 사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19세기 후반 최한기 같은 실학자, 기학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이어졌어요.
최한기는 기를 중심으로 자연과 인간을 설명한 학자로, 임성주의 문제의식을 다른 언어로 계승한 인물이에요.
정통을 거부한 학자가, 결과적으로 조선 사상의 폭을 가장 크게 넓혔어요.
회사를 떠나 작은 도시로 내려간 엔지니어가 혼자 만든 설계도가 수십 년 뒤 업계 표준의 한 축이 된 것처럼요.
임성주는 주류가 되려고 싸우지 않았어요.
녹문 산골에서 혼자 생각하고, 쓰고, 가르쳤어요.
그리고 그 고독한 작업이, 그가 죽고 나서야 조선 지성사에서 제자리를 찾았어요.
"세상의 근본은 기 하나뿐"이라고 말한 그 한 문장이 수백 년을 건너왔어요.
지금 우리가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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