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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504년 가을, 김굉필이 사약 앞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흰 수염을 입에 무는 것이었어요.
51세의 늙은 학자는 형이 집행되기 직전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긴 흰 수염을 한 올 한 올 모아 입 안으로 밀어 넣었어요.
그리고 형리에게 말했어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네. 수염 한 올도 다치지 않게 해주게."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는 "몸과 머리카락과 피부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수염 한 올이라도 잘리면,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을 손상하는 거라는 얘기죠.
이 구절은 그가 평생 손에서 놓지 않던 소학(小學)의 첫 장에 나와요.
소학은 송나라 유학자 주희가 어린아이를 위해 쓴 유교 입문서예요.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같은 책이에요.
사형 통보를 받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정장을 입고, 어릴 적 배운 교과서 첫 줄을 끝까지 지키며 형장에 걸어간 거예요.
이건 퍼포먼스가 아니었어요.
그에게는 그게 진짜 믿음이었어요.

30세 김굉필은 자신을 어린아이라 불렀어요.
당시 조선 선비들이 읽어야 할 책은 따로 있었어요.
사서삼경, 주역 같은 고급 경전들이 진짜 학문의 세계였고, 소학은 서당 아이들이 맨 처음 배우는 기초 교재였어요.
그런데 김굉필은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 들어간 뒤부터 다른 경전은 거의 읽지 않았어요.
김종직은 당시 조선 영남 지방 선비들의 학문적 구심점 역할을 한 인물이에요.
그 문하에서 가장 촉망받던 제자가, 고급 경전 대신 어린이 입문서 한 권만 붙들고 앉아 있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스스로를 "소학동자(小學童子)"라 불렀어요.
직역하면 "소학을 읽는 어린 학동"이에요.
명문 대학원을 합격한 사람이 30대 중반까지 책상 위에 초등 교과서 한 권만 올려두고 "저는 아직 어린아이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에요.
그가 남긴 시 한 구절이 있어요.
"글공부로는 천기를 몰랐는데, 소학 안에서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다."
김굉필한테 소학은 암기 대상이 아니었어요.
매일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었어요.

유배지의 죄인이 다음 세대 개혁가의 스승이 된 곳은 평안도의 한 산골 초가였어요.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가 터졌어요.
무오사화는 연산군이 선비들을 대거 숙청한 사건인데, 스승 김종직의 글이 문제가 되어 그 제자들까지 화를 입었어요.
김굉필도 연루되어 평안도 희천(熙川)이라는 산골로 유배를 가게 됐어요.
그 유배지에 한 청년이 찾아왔어요.
아버지의 부임을 따라 희천 근처에 와 있던 17세 조광조(趙光祖)가 죄인으로 낙인찍힌 노학자를 직접 찾아가 가르침을 청한 거예요.
초가 마당에서 소학을 매개로 두 사람의 스승과 제자 관계가 시작됐어요.
이 짧은 만남이 씨앗이 됐어요.
훗날 조광조는 중종 대에 도학정치(道學政治)를 주도하는 개혁가가 되는데, 도학정치란 유교의 이상을 현실 정치에 실현하려 한 운동이에요.
오늘날로 비유하면 이래요.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이 지방 어딘가에서 한 청년을 우연히 만났고, 그 대화 하나가 20년 뒤 그 회사 전체의 방향을 바꿨어요.
사람의 영향력이 끝나는 건 죽을 때가 아니에요.

사약을 받고 죽은 김굉필은 한 세기 뒤 조선이 가장 높이 모시는 다섯 학자 중 하나가 되었어요.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로 김굉필은 끝내 사약을 받았어요.
갑자사화는 연산군이 일으킨 두 번째 대규모 선비 숙청으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한꺼번에 제거한 사건이에요.
그는 죄인으로 처형됐고, 그의 이름은 역사의 어두운 자리에 놓였어요.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어요.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中宗)이 즉위하면서 김굉필은 신원됐어요.
신원이란 억울하게 받은 죄명을 국가가 공식으로 씻어준다는 거예요.
그리고 1610년, 광해군 때였어요.
조선은 문묘(文廟)에 다섯 학자를 새로 배향했어요.
문묘는 공자와 역대 뛰어난 유학자들을 국가가 공식으로 모시는 사당, 오늘날로 치면 유교 명예의 전당이에요.
그 다섯이 바로 동방오현(東方五賢)이에요.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그리고 김굉필이에요.
조광조는 김굉필에게서 소학을 배운 제자였고, 이황은 훗날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학자예요.
그 계보의 가장 앞자리에 김굉필의 이름이 놓인 거예요.
죄인으로 죽은 사람이 성현이 됐어요.
마지막 순간, 그의 입 안에는 흰 수염이 물려 있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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