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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에도 한복판이 아니라, 동북 변방의 한 시골 의사가 막부 전체를 부정하는 책 101권을 혼자 쓰고 있었어요.
안도 쇼에키(1703-1762)는 지금의 아오모리현에 해당하는 하치노헤의 작은 마을에서 환자를 보던 의사예요.
에도, 그러니까 막부 권력의 중심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변방이었어요.
그가 밤마다 써내려 간 것은 「자연진영도(自然真営道)」 101권이었어요.
도쿠가와 막부가 세운 신분 질서 전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생전에 세상에 공개된 건 「통도진전(統道真伝)」이라는 책의 일부뿐이었어요.
101권짜리 본편은 단 한 명의 제자에게만 몰래 회람됐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작은 동네 한의원 원장이 매일 밤 진료실 뒷방에서 "이 나라 시스템 전체가 틀렸다"는 100권짜리 책을 쓰는데,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요.
그게 안도 쇼에키의 삶이었어요.
그런데 왜 숨겼냐고요?
당시 도쿠가와 막부는 체제를 비판하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시대였어요.
그러니까 101권이라는 분량은 단순한 집필량이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쌓아 올린 양이기도 해요.
그가 사무라이, 유학자, 승려, 신관을 한 단어로 부른 이름이 있었어요.
부경탐식의 무리(不耕貪食の徒), 그러니까 직접 농사짓지 않고 남의 노동으로 탐욕스럽게 먹는 기생충이에요.
당시 일본 인구의 9할 가까이가 농민이었어요.
하지만 권력은 농사 한 번 지어본 적 없는 무사 계급에 있었어요.
무사가 거리에서 칼로 평민을 베어도 처벌받지 않던 시대였어요.
그 시대에 쇼에키는 책에 이렇게 새겨 넣었어요.
사무라이도, 유학자도, 승려도, 신관도 모두 일하지 않고 먹는 무리라고.
그것을 부경탐식의 도, 즉 기생충이라 불렀어요.
지금으로 치면 현직 대통령, 대기업 회장, 대학교수를 한꺼번에 종이에 "기생충"이라고 못 박는 거예요.
회사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모든 관리자와 임원을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과 같아요.
쇼에키는 그것을 18세기에, 칼 찬 무사가 활보하는 시대에 했어요.
안도 쇼에키는 세상을 두 가지로 나눠서 봤어요.
하나는 법세(法世), 성인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신분 차별이 지배하는 세계예요.
또 하나는 자연세(自然世), 모든 사람이 직접 땅을 갈며 평등하게 사는 세계예요.
그는 이 이상을 만인직경(萬人直耕)이라는 네 글자로 압축했어요.
만인직경이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직접 농사짓는다"는 뜻이에요.
결국 왕도, 사무라이도, 스님도, 학자도 예외 없이 직접 흙을 파야 한다는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마을이에요.
대통령도, 판사도, 교수도, CEO도 매일 직접 밭에 나가 일해야 하는 사회.
그 사회에는 처음부터 '나는 일 안 해도 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게 있어요.
쇼에키는 1750년대에 남녀평등(男女一体, 남녀일체)까지 명문화했어요.
"남자와 여자는 본래 하나"라고 책에 적었는데,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18세기 동아시아에서 변방 의사가 종이에 쓴 말이에요.
그가 죽고 137년 뒤, 한 학자가 도쿄 고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해요.
그리고 24년 뒤, 관동대지진이 그 책의 9할을 삼켜요.
1899년, 학자 가노 고키치(狩野亨吉)가 도쿄의 한 고서점 구석에서 「자연진영도」 사본을 우연히 발견해요.
가노 고키치는 당시 일본 최고 수준의 서지학자였고, 이 발견으로 안도 쇼에키는 137년의 잠에서 깨어나요.
그런데 운이 거기까지였어요.
이후 도쿄제국대학에 보관되던 원고들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돼요.
관동대지진은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를 초토화한 대재앙이었어요.
그 불길 속에서 101권 중 12권만 살아남았어요.
시대를 200년 앞선 책이 150년 동안 묻혀 있었어요.
겨우 발견됐더니 지진이 9할을 삼켜버렸어요.
이보다 더 극적인 유실 사고가 있을까요.
그나마 남은 것들은 전후에 캐나다 외교관 E.H. 노먼이 1949년 영문 연구서 『Andō Shōeki』로 엮어 세계에 소개했어요.
노먼은 일본 주재 외교관이면서 탁월한 일본사 연구자였는데, 그의 작업 덕분에 쇼에키는 처음으로 국경 밖에서 읽히기 시작했어요.
안도 쇼에키가 101권을 서랍에 숨긴 지 260여 년이 흘렀어요.
지금 손에 잡을 수 있는 건 12권뿐이에요.
그 12권 안에 여전히 남아 있어요. 일하지 않고 먹는 자는 모두 기생충이다, 라는 말이.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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